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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蝕 일식

Gihun Noh

2019.08.26 ~ 2019.11.09

우리는 가슴 속에 다시 못 올 시절에 대한 기억을 로맨틱하게 간직하고 살아간다. 비록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라 하더라도 사회가 함께 쌓아 온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한 시대에 대한 향수(鄕愁)를 갖게 한다.

노기훈은 <1호선>(2013-2014), <구미>(2009-) 등 지난 작업에서 한 지역에 살아가면서 그곳의 시간을 쌓는 군상을 담담하게 조망했다. 작가는 최대한 힘을 빼고 피사체를 바라보며, 개인의 에피소드를 강조하지도, 촬영 장소가 어디인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을 풍경처럼 담아내며 그 이면에 축적된 사회적 상황을 포착했다. 이번 전시 《日蝕일식》에서는 과거에 존재했던 것을 현재에는 담아낼 수 없는 사진의 매체적 특성에 실험을 감행하여 20세기 초 근대의 낭만과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현대로 불러들이고자 한다.

도쿄에서 약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가마쿠라는 일본이 현대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고도(古都)보존법에 의해 보호받으며 역사와 전통 그리고 자연 풍경이 살아 있는 도시로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들이 흘러든 도시다. 또한, 수도 근교 여행지로 각광받으며 과거의 낭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 노기훈의 시선은 가마쿠라와 에노시마의 치고가후치(稚児ヶ淵)를 찾은 이들에게 향한다. 후지산을 품은 해변에서 태양이 자취를 감추기 전 길게 늘어선 햇빛으로 뒤덮인 인물의 뒷모습은 실루엣만이 남는다. 한데 엉켜 일몰을 바라보는 연인들의 뒷모습은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가 담은 흑백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 시간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낭만과 일식처럼 마주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근대의 낭만과 현대의 시간이 결합된 순간을 망원으로 담았다.

노기훈은 《日蝕일식》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숨어있던 낭만을 불러들이는 동시에 사진술이 지나온 근대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가마쿠라의 일몰처럼 내리쬐는 조명으로 인해 액자 안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와 흑백 사진, 작가가 구성한 결정적 순간은 전시장 내에서 현대적 물질과 만나게 된다. 이제는 근대의 사진술도 낭만의 시간도 지났지만 우리는 노기훈이 만들어낸 일식으로 인해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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