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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Vacant Room

HyunTaek CHO

2019.11.11 ~ 2020.02.01

빈 방

몇 년 전부터 전남 나주에 있는 작업실 근처에서 옛 성벽을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짧은 기간에 대부분의 주민이 이주하고, 집들은 철거되었다. 철거를 앞두고 비어있는 집들을 돌아보다가 곧 사라지게 될 집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매년 봄이면 늘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유채꽃을 바라보았을 작은 방안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봄을 들여와 함께 찍어주고 싶어서, 방을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어 마당의 모습이 비친 방안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첫 촬영, 어두운 방 안에 작은 구멍을 통해 마당의 노란 꽃이 들어와 피기 시작할 때 어머니로부터 아프시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흘 후 어머니께서는 큰 수술을 받으셨고, 보름 후에 돌아가셨다. 2014년의 봄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막내이면서 장남이었던 나는 사람들 앞에서 슬픔을 표현할 수 없었고, 혼자 놓인 상황에서야 비로소 제발 귀신으로라도 내 앞에 한 번만 나타나 주라고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20여 년 넘게 살던 집을 떠나 도망치듯 낯선 도시로 이사를 했다. 나는 한 집에서 아버지와 할머니와 어머니를 잃었고, 그 사실은 견딜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 날 지독하게 옥죄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예전 그 집 앞을 서성거리곤 한다. 그해 연말쯤에야 나는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작업실 근처는 이미 철거를 마치고 재건이 진행 중인 상태라 또 다른 새로운 빈집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노동처럼, 강박처럼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집이란 내게 무엇일까. 주인의 냄새가 베일만큼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가 하루아침에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에겐 또 집이란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긴 시간 어둠 속의 촬영을 마치고 방을 나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을 마주하며 마루 기둥에 기대앉아서 나는 마치 꿈에서 깬 듯 가슴이 먹먹하고, 그리움이 복받쳐 중얼거렸다. 현실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정말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다고 해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 엄마는 그냥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다른 세계로 옮겨간 것은 아니었을까?
방을 촬영하다 보면 빛과 사진의 이상한 성질을 발견할 수 있다. 채광이 좋아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남향의 방보다 오히려 온종일 직접 빛을 받지 못하는 북쪽의 방에서 더욱 선명하게 비치는 상을 만나게 된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어둠 속이 보인다. 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어둡고 차가운 북쪽의 방에서 마당의 눈부신 풍경이 함께 어울려 추는 춤을 보았다. 어디까지가 방이고 어디까지가 마당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인 듯 현실인 듯 안과 밖의 두 세계가 조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매 순간, 나는 엄마가 옮겨간 세계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조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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